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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걸음[느낌표]

2004.05.06 18:46

TOTO 조회 수: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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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토요일 밤 9:45
연출 : 이민호, 여운혁, 신정수, 안수영
진행 : 신동엽, 김용만, 유재석, 김진수, 송은이, 윤정수, 박수홍, 서경석, 주영훈 등
방송 : 2001. 11. 10 ~ 2004. 05. 01

옛 속담에 '느리지만 황소걸음'이란 말이 있다. 비록 속도는 아주 느리지만 한걸음 한걸음 신중하고 힘있게 걷는 걸음을 의미한다. 보다 더 추상적인 의미로 해석하자면 느리지만 점진적이고 근본적인 진보라 할 수도 있다. 5월 1일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린 '느낌표'를 그동안 보아오면서 내내 생각되던 것이 이 속담이었다.

'0교시 폐지', '헬멧착용', '가출청소년', '책읽기', '불법체류 노동자', '청소년 할인하기', '수업시간 존대말하기', '줄넘기 하기', '부모님께 자주 전화하기'... '느낌표'가 그동안 다룬 주제들이다. 무척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부터 무척 거창한 주제까지 말 그대로 '느낌표'는 수년동안 우리 사회에서 사각지대에 있던 문제들을 이리저리 헤집어놓았다. 이들은 사소한 문제 같지만 대부분 우리의 '인권' 에 관련된 문제였다. 결국 그 사소함들은 우리의 가장 소중하고 근본적인 가치인 '인권'에 닿아있는, 결국은 느리지만 가장 큰 걸음을 걸었던 발자국이라 하겠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MBC는 예능국과 교양국의 구분이 모호해졌다고 할만큼 '느낌표'는 두 장르의 성격을 모두 지녔다. 물론 예전부터 MBC는 이러한 시도를 계속해왔다. 대표적인 예로 '일요일일요일 밤에'는 십여년전부터 뉴스 형식을 도입하여 시사적, 혹은 교양적 주제(예를 들면 유행하는 정치적 쟁점이나 다양한 운동의 소개 등)를 다루어왔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예능 프로그램을 주(主)로 하고 그 소재만을 따오던 방식이었다. 이에 비해 '느낌표'는 신동엽, 송은이, 김용만, 유재석, 서경석 등의 개그맨들을 MC로 기용하여 주제는 '교양프로그램'이되 진행은 '예능프로그램'으로 이끌어나갔다.

이러한 형식을 통해 '느낌표'는 거창한 주제가 아닌,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회적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정책적 차원이나 시민단체의 차원에서 다루기 힘든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회 문제들에 관심을 쏟았고, 이는 시청자들에게도 '아차'하는 깨달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결과 '느낌표'는 오락성그리고 차별화된 공익성으로 전국민적인 호응을 이끌어 냈고 이를 바탕으로 '청소년증 발급', '어린이 도서관 건립'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데까지 성공할 수 있었다. 결국 '느낌표'는 조금씩, 그리고 느리긴 하지만  우리 주변의 문제들에 대해 국민 전체로 하여금 다시한번 생각할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는 사회적 측면의 공로, 그리고 '시청률과 공익성은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는 기존의 법칙을 뒤집으며 '공익적 예능프로그램'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확립을 가져오는 공로를 세웠다고 할 수 있겠다. '느낌표'의 성공 이후 현재 타 방송사에서 방영되고 있는 '비타민'이나 '대한민국 1교시'등은 '공익적 예능프로그램'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느리지만 황소걸음'이 바로 '느낌표'의 걸음이었다.

하지만 '느낌표'의 성공이 가져온 부작용 또한 없지 않다. 어느새 시청자들의 머리속에는 '모든 프로프로그램은 공익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혀 마치 사회적이고 교훈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지 않은 예능프로그램은 곧 저질예능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청자들 때문에 천편일률적으로 대부분 예능프로그램이 사회적, 교훈적, 혹은 정보성을 추구하려는 풍조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본질은 시청자로 하여금 건전한 웃음을 안겨주는 것이지 정보성이나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형태의 예능프로그램 자체를 즐길줄 아는 시청자와 다양한 형태의 웃음을 전달하기 위해 골몰하는 방송관계자의 노력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