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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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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시선에 담긴 나를 본다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스스로 볼 수 없는 것들을 그들이 볼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한 모습이 그들에게는 다른 형태로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담긴 모습 또한 부정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이기에 전혀 다른 나를 만나는 것처럼 색다른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국화와 칼'은 서구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본, 이 역시 같은 동양인이기에 느낄 수 없었던 일본 고유의 색깔을 담고 있기에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개념인 효, 의리, 의무 등등의 개념들. 서구에 이러한 개념들과 피상적으로 상치되는 단어는 있을지언정, 완전히 일치하는 개념은 합리주의적 시각이 다분한 그들에게 완벽히 이해될 수는 없을 것이다. 런던에서 만났던 한 영국인에게 우리의 '효'라는 것을 단지 '부모님께 감사해라', '부모님께 친절해라' 등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나의 답답했던 경험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일본의 정신적 개념들을 일화와 함께 차분히 소개하는 것이 '국화와 칼'의 내용이다.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때 겪었던 이해하기 힘든 일본인 때문이다. 포로로 잡힌 일본인의 태도를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던 미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일본'을 알기 위한 계획을 세웠고, '국화와 칼'은 그 계획의 산물이다. 전쟁통이었기 때문에 사회과학의 기본적인 방법론인 '참여관찰'이 불가능했음에도 그 치밀함과 완벽함은 놀랍기만 하다.

재미있는 점은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느낌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개념들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1 + 1 = 2'인 것을 하나하나 정확히 풀어서 설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각각의 개념들에 대해 일본의 역사적 배경, 그리고 생활속의 일화등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풀어내어 조목조목 설명하는 것, 우리에겐 어쩌면 유치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구인의 눈에는 그만큼 '어렵고 생소한' 개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세하게 풀어 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객관적 시각에서 우리의 사고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독자에게 제공한다.

또한 '국화와 칼'의 나이만큼 그동안 계속된 개정은 이 책이 '번역서'임을 독자들로 하여금 깨닫기 힘들게 한다. 여느 번역서와는 달리 마치 우리나라 작가가 지은 것처럼 읽기가 자연스러운 점 역시 또 하나의 장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글 중간중간에 보이는 지극히 '서구적'인 사고는 불가피함을 인정하면서도 이 책의 한계로 남는다. 이해하기 힘든 동양적 사고에 대해서는 은근히 '비합리적'임을 드러내어 '상대성의 존중'에서 그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간중간 씁쓸한 웃음이 자연스레 번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에 관해 가장 객관적인 저서라 찬사를 받는 것은 '국화와 칼'이 갖는 한계가 그 객관성에 비해 지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전여옥씨의 말처럼 지극히 우리의 시각에서 '일본은 없다' 고 할 수 있겠지만 제3자의 눈에 분명 일본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향유하며 존재하고 있었다.

베네딕트가 지금껏 살아 있어 그녀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를 그린 책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