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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호랑이의 여유가 필요할 때

2004.07.08 17:03

이현국 조회 수:602

옛날 이야기 중 이런 것이 있다. 호랑이가 봐준 싸움에서 이긴 토끼가 이를 자랑하고 싶어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다녔더니 오히려 다른 짐승들은 그 호랑이의 인자함을 칭찬하더란 것이다. 절대적 우위에 있음은 이렇듯 사소한 혼란으로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한 세기도 채우지 못하고 붕괴해버린 사회주의. 이 덕분에 지금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는 현존하는 가장 우월한 체제임이 간접적으로 증명되었다. 그러나 이 우월함은 완전치 않은 상태다. 민주주의의 우월함은 어원 그대로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 하나하나의 인권이 완벽히 존중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지만 현재까지는 단순히 경제적 우위를 통해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근본이념이 '민중에 의한 지배'인 이상 그 절대적 우월성은 쉽게 부정하기 어렵다.

이렇듯 우리사회는 절대적 우월성을 담보하는 민주사회를 표방하면서도 최근 의문사위의 결정에 반발하는 수구언론들과 보수단체의 태도를 보면 마치 토끼를 이기지 못해 분개하는 호랑이의 모습이 연상된다.

이들이 갖는 오류는 민주주의를 마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와 대립관계를 갖는 '체제'로 본다는 점이다. 이렇게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사회에서는 사회주의적 시각을 갖는 자는 우리의 체제를 전복시킬 위험이 있는 존재로 여기고 따라서 이들을 우리의 체제로 편입시키거나 아니면 방출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루소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구성원 개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일종의 계약에 불과하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라면 구성원 개개인의 신체적 자유를 비롯한 인격, 사상의 자유 등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수많은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수많은 국가 운영 체제 중 하나가 아닌 지금까지 인류가 추구해 온 하나의 이념적 지향점이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추구하느냐에 따라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일본의 입헌군주제 등 다양한 체제가 존재가능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우리는 헌법 제1조에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즉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임을 밝혀왔다. 이는 곧 우리 사회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사상의 자유를 포함한 인권을 보장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록 북에서 남파된 간첩이라 할 지라도 강요된 전향에 항거하다 죽임을 당했다면 이는 당연히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헌신했다고 보아야 한다. 공산주의자라 할 지라도 그 사상까지 강요할 권리는 민주주의 사회임을 표방한 대한민국이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토끼에게 져 준 호랑이의 여유를 우리 사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양한 사상도 너그러이 포용할 수 있는, 이를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토끼를 이기겠다는 어리석음 때문에 반세기 동안 우리를 짓눌렀던 레드콤플렉스, 이제는 이를 떨쳐버릴 때도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