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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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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토, 일 밤 9:45
연출 : 신우철
극본 : 김은숙, 강은정
출연 : 김정은, 박신양, 이동건, 오주은, 김서형, 정애리, 김성원, 조은지, 윤영준, 성동일

급기야 꿈의 시청률 50%를 넘어섰다. 우리나라 TV 두 대 당 한 대는 이 드라마를 향하고 있는 셈이다. 각종 황색 신문들은 박신양의 '애기야(→'아기야'가 표준어)'라는 대사 하나를 놓고 난리법석을 떨었을 정도로 극 중 대사 하나하나는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런 난리 와중에 수많은 대중들은 영문 모를 판타지 속으로 계속 끌려가는 중이다.

이 드라마는 시작 전부터 세상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출연하는 박신양과 김정은, 파리 로케이션 등 많은 볼거리로 충분히 담금질을 했다. 그리고 뚜껑을 연 순간 충분한 담금질로 연마된 칼의 매서움은 더욱 날카롭게 다가왔다. 시청자들은 파리의 시내 곳곳은 물론 니스의 호화주택, 유럽 경제의 중심 중 하나인 라데팡스 지역,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리무진 등 상상으로도 불가능한 귀족사회를 편안히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거대한 압박은 시청자를 브라운관 앞으로 잡아 끄는데 일단 성공했다. 이러한 볼거리는 신데렐라 이야기, 삼각관계 등 우리나라 드라마 힘의 근간(?)인 요소들과 어울어져 '파리의 연인'의 시청률 순항은 계속 됐다. 그리고 급기야 기주(박신양 분)와 태영(김정은 분)의 약혼, 그리고 기주와 수혁(이동건 분)에 얽힌 출생의 비밀까지 덧붙여져 꿈의 시청률을 이루고 말았다.

이 드라마의 뻔한 구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모 PD의 말처럼 드라마의 극적 긴장감을 길게 이어갈 수 있는 요소는 삼각관계나 출생의 비밀 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비현실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철저히 현실을 그려 서민들의 애환을 다루는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철저히 환상을 그려 시청자들로 하여금 한시간 동안이나마 자유로이 꿈꿀 수 있게 하는 드라마 역시 고유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두고 보기 힘든 것은 우선 김정은의 연기다. 태영의 캐릭터가 충분히 매력적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파리의 연인'의 화두는 기주를 연기하는 박신양에게만 몰려 있다. 김정은의 이름값은 연기력이 아닌 CF에서 기인한 것이다. 오랜만에 나들이 한 브라운관에서 김정은이 보여준 것은 눈 동그랗게 뜨고 궁시렁 거리는 표정, 어설프게 뭉뚱거리는 대사 뿐이다. 내면화 된 캐릭터가 아닌 보여주기 위한 캐릭터를 표현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처음이야 그냥 지나칠 수 있겠지만 극의 전개가 절정에 이르러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줘야 할 시점인데도 김정은의 연기는 극 처음과 다르지 않다. 그녀의 연기는 이제 웃음조차 유발하지 못한다. 덕분에 태영은 지극히 평면적인 캐릭터에 머무른 채, 극은 종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마도 김정은의 이름값에 기죽은 PD가 연기지도조차 마음껏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또 하나는 '애기야' 파문 이후로 기주와 태영이 함께 하는 장면, 즉 기주가 약간 바보스럽게 나오는 장면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물론 장안의 화제를 불러 일으킨 도화선이 기주의 그런 엉뚱함이긴 하지만 그것 역시 극중 자연스럽게 녹아 있을 때 제맛이 나는 법이다. 그러나 지금 '파리의 연인'의 절반 이상의 비율은 바보스러운 '기주'에게 몰려 있다. 만원 가지고 하루를 보내자고 태영이 기주에게 제의한 후 데이트 장면... 난 질력이 날대로 나 버렸다.

연장방송을 하네마네 말이 많다. 시청자들이 좋아한다 싶으면 그 어떤 오버도 서슴지 않는 SBS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있지만, 시청률 위에서 발짱끼고 앉아 마치 왕인양 이리저리 드라마를 쥐었다 폈다 하는 그들을 보자면 울화통이 치민다. 줏대있는 SBS이기만 했더라도 '파리의 연인'은 2004년의 가장 낭만적이고 멋진 연인일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이렇게 울화통이 치밀어도 토요일, 일요일 저녁 10시만 되면 SBS로 채널을 돌리는게 나, 그리고 TV를 켠 사람들의 1/2. 그렇게 드라마와 시청자는 흘러간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