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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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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서른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갖 지난 서른의 사람들에게 '슬램덩크'라는 이름은 그리 낯설지 않다. 당시 만화주간지의 끝에 부록으로 달려 매회 감질날 분량으로 연재되던 만화, 그 적은 분량의 만화를 보기 위해 보지도 않던 그 두꺼운 만화책을 통째로 사던 그 시절이 내게 있었다. 친구끼리 100원씩 모아 구입하여 돌려보던 그것은 결국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그 전부를 모아놓고서야 나는 성이 풀렸다. 그리고 이는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만화책 전질이 되었다.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보아도, 이 만화의 질은 결코 지금의 것에 뒤쳐지지 않는다. 꽤 오래 연재되었기에 조금은 어색했던 초반의 그림이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지금껏 그만큼 깔끔하고도 인체를 정확히 묘사한 만화를 본 기억이 없다. 그러나 이 만화의 백미는 그림보다도 이것을 이어가는 스토리에 있다.

단순하고 싸움만 잘하는 백호가 고등학생이 되어 아리따운 소연을 만나게 되고, 농구를 좋아하는 소연의 마음에 들기 위해 농구를 시작한다. 그리고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진 백호는 점차 팀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성장한다는 것이 이 만화의 시놉시스다.

하지만 이 단순한 시놉시스 안에는 젊은이들을 향한 수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 아직까지도 나에게 힘이 되는 말은 신선처럼 멋진 말을 무수히 뱉어낸 안감독의 대사 중 이것이다.
"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게임은 끝이다."
무기력하게 당하는 팀원들에게 진정한 패배는 실제로 지는 순간이 아닌, 질 것이라 생각하는 순간에 결정된다는 그 말. 내 뇌리속에 담긴 만화의 그림들과 함께 이 말이 떠오를 땐, 아직도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기고 싶으면 즐기라던 풍산고 감독의 말, 목표를 향한 지치지 않은 열정을 보여준 인물들, 항상 주전들에 밀려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묵묵히 정진하여 결국 중요한 순간에 빛을 발하던 조연들, 각박한 현실을 잊게 하는 순수함을 안겨줬던 인물들......모두가 나에게는 발산하기 힘든 울분만을 갖고 있던 시절을 즐길 수 있게 했던 탈출구였으며 동시에 해방구였다.

그리고 매 장면마다 한없이 배꼽잡고 웃을 수 있던 유쾌함을 던져준 것 또한 '슬램덩크'의 매력이다.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미워할 수 없는 강백호의 행동들, 서태웅과 강백호의 어설픈 경쟁관계, 매번 엉뚱한 소일거리뿐인 강백호군단, 순수함 때문에 어설픈 행동을 일삼았던 인물들......이들이 안겨준 웃음 때문에 난 참 많이도 울었다.

슬램덩크의 연재가 끝난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난 이 작가의 2편을 고대하고 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끝없이 재판될 뿐, 2편이 나올 것이라는 소식이 없다. 물론 전편을 뛰어넘는 속편은 없다는 속설이 있지만, 전편정도의 속편만 나와 준다 해도 기꺼이 구입해 볼 용의가 있다. '슬램덩크'는 나에게 레테의 강 저편에 있는 희미하게 보이는 이데아였고 이는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