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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주변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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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임찬상
출연 : 송강호, 이재응, 문소리, 류승수, 노형욱, 조영진, 손병호

최근 우리 영화계의 화두는 단연 '현대사의 재조명'인듯 하다. 최근 개봉한 '효자동 이발사' 역시 이러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우리의 현대사를 재조명했다면, '효자동이발사'는 해방 이후부터 10.26까지의 통사를 소시민의 시각을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고, 이점 때문에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와는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이 '효자동 이발사'의 특징이다.

성한모(송강호 분)은 청와대 근처 동네인 효자동의 이발사다. 이승만의 3.15 부정선거, 4.19 혁명, 5.16 군사정변 등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그는 동네 사람들의 이런저런 의견에 휩쓸려다니는 줏대없는 성격의 소유자다. 우연한 계기로 성한모는 청와대의 이발사로 발탁되고 이 때문에 한때는 동네 사람들의 관심을 사기도 했지만 그는 권력 앞에 힘없는 소시민일 뿐이다.

영화는 커다란 딜레마를 주된 축으로 구성된다. 감히 넘볼 수 없는 대통령(조영진 분)을 맞딱트린 성한모의 과장된 몸짓에서 비롯되는 웃음과 그러한 무소불위의 대통령이 존재하는 시대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에서 비롯되는 비애를 격자로 수놓으며 영화는 진행되는데 이러한 상극된 감정의 교차로 영화를 보는 내내 웃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고민되는 장면이 무척 많았다. 이런 웃을수도 없는, 울수도 없는 딜레마는 영화를 보는 내내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실제로 우리가 그 시대를 바라본다면 느낄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것일수도 있다. 말 한마디 잘못하거나, 설사를 하거나, 그림의 소재를 잘못선택하거나, 글에 단어 하나 잘못쓰게 되면 '반공'이라는 미명하에 잡혀가던 시대.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웃기는, 그러나 웃을수도 없는 시대 아닌가?

한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의 지나친 욕심이다. '효자동 이발사'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묘사, 평범한 이발사에서 대통령의 이발사가 된다는 다분히 '영화적'인 스토리,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등 여러가지를 모두 담아내려 애쓰고 있다. 월남전에 참전했다 손을 잃고 돌아온 이발소 조수인 진기(류승수 분)의 비애는 계속 웃다가 갑자기 튀어 나왔다. 또 고문때문에 다친 다리를 기적적으로 완치한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는 장면으로 장식되는 마지막 장면은 계속 웃다가, 비애를 느끼다가를 반복하는 나에겐 조금 '생뚱맞은'장면으로 다가왔다.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관객은 웃다가, 비애를 느끼다가 결국은 허무함에 둘러싸인채 멍한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평범한 이야기에 특별한 매력을 부여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흥행보증수표' 송강호의 연기, 역사책으로밖에 알 수 없었던 우리 현대사의 구체적 묘사, 아직도 진행형인 우리의 현대사를 갖고 만들어냈다는 점이 꺼림직하긴 하지만 그래도 쉴새없이 터지는 웃음. 이 세가지가 '효자동 이발사'의 전부다. 이정도만 해도 썩 괜찮은 영화라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